2024.05.30 (목)

  • 흐림속초18.1℃
  • 흐림14.0℃
  • 흐림철원13.6℃
  • 흐림동두천14.0℃
  • 흐림파주13.0℃
  • 흐림대관령9.9℃
  • 흐림춘천13.9℃
  • 흐림백령도14.3℃
  • 흐림북강릉19.1℃
  • 흐림강릉22.0℃
  • 흐림동해18.7℃
  • 흐림서울17.1℃
  • 흐림인천16.8℃
  • 흐림원주16.3℃
  • 구름많음울릉도19.9℃
  • 흐림수원14.7℃
  • 흐림영월12.9℃
  • 흐림충주15.1℃
  • 흐림서산15.5℃
  • 흐림울진15.8℃
  • 흐림청주18.7℃
  • 흐림대전16.9℃
  • 흐림추풍령15.1℃
  • 흐림안동15.6℃
  • 흐림상주17.9℃
  • 구름많음포항18.9℃
  • 흐림군산16.2℃
  • 흐림대구17.2℃
  • 흐림전주16.7℃
  • 구름많음울산14.8℃
  • 구름많음창원16.6℃
  • 구름많음광주18.8℃
  • 구름많음부산17.2℃
  • 구름많음통영15.3℃
  • 구름많음목포17.2℃
  • 구름많음여수17.7℃
  • 구름많음흑산도15.6℃
  • 구름많음완도15.7℃
  • 흐림고창16.1℃
  • 흐림순천13.6℃
  • 흐림홍성(예)16.0℃
  • 흐림15.3℃
  • 구름조금제주16.8℃
  • 흐림고산16.5℃
  • 구름많음성산14.9℃
  • 구름많음서귀포19.0℃
  • 흐림진주14.1℃
  • 흐림강화14.8℃
  • 흐림양평15.0℃
  • 흐림이천14.7℃
  • 흐림인제13.0℃
  • 흐림홍천13.5℃
  • 흐림태백11.1℃
  • 흐림정선군11.3℃
  • 구름많음제천13.1℃
  • 흐림보은14.7℃
  • 흐림천안14.3℃
  • 흐림보령16.1℃
  • 흐림부여15.2℃
  • 흐림금산14.0℃
  • 흐림15.5℃
  • 흐림부안16.8℃
  • 흐림임실13.5℃
  • 구름많음정읍15.4℃
  • 흐림남원15.7℃
  • 구름많음장수12.6℃
  • 흐림고창군15.4℃
  • 흐림영광군16.0℃
  • 구름많음김해시15.8℃
  • 흐림순창군15.6℃
  • 구름많음북창원18.0℃
  • 구름많음양산시14.4℃
  • 구름많음보성군16.6℃
  • 구름많음강진군15.5℃
  • 구름많음장흥15.1℃
  • 구름많음해남14.6℃
  • 흐림고흥13.3℃
  • 구름많음의령군14.9℃
  • 흐림함양군14.5℃
  • 흐림광양시16.9℃
  • 구름많음진도군13.4℃
  • 흐림봉화11.9℃
  • 흐림영주14.2℃
  • 흐림문경16.4℃
  • 흐림청송군11.4℃
  • 흐림영덕15.2℃
  • 흐림의성12.9℃
  • 흐림구미16.4℃
  • 흐림영천14.6℃
  • 구름많음경주시14.6℃
  • 흐림거창14.1℃
  • 흐림합천15.6℃
  • 흐림밀양15.9℃
  • 흐림산청14.9℃
  • 구름많음거제14.9℃
  • 흐림남해15.9℃
  • 구름많음13.8℃
기상청 제공
‘최’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