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5 (토)

  • 흐림속초16.1℃
  • 비16.3℃
  • 흐림철원16.6℃
  • 흐림동두천17.2℃
  • 흐림파주16.1℃
  • 흐림대관령11.6℃
  • 흐림춘천16.1℃
  • 구름많음백령도16.5℃
  • 흐림북강릉15.3℃
  • 흐림강릉15.5℃
  • 흐림동해16.8℃
  • 흐림서울19.6℃
  • 박무인천17.4℃
  • 흐림원주19.5℃
  • 구름많음울릉도16.5℃
  • 흐림수원19.5℃
  • 흐림영월16.9℃
  • 흐림충주18.7℃
  • 흐림서산15.9℃
  • 흐림울진17.1℃
  • 흐림청주19.7℃
  • 흐림대전18.8℃
  • 흐림추풍령16.6℃
  • 흐림안동17.3℃
  • 흐림상주17.7℃
  • 구름많음포항17.7℃
  • 흐림군산18.1℃
  • 흐림대구17.6℃
  • 흐림전주18.8℃
  • 흐림울산17.3℃
  • 흐림창원19.4℃
  • 구름조금광주19.6℃
  • 구름많음부산19.2℃
  • 구름많음통영19.0℃
  • 맑음목포18.7℃
  • 구름많음여수19.6℃
  • 맑음흑산도17.5℃
  • 맑음완도21.1℃
  • 구름조금고창
  • 구름조금순천18.1℃
  • 박무홍성(예)18.8℃
  • 흐림18.3℃
  • 맑음제주20.3℃
  • 맑음고산20.1℃
  • 맑음성산20.6℃
  • 구름조금서귀포20.4℃
  • 흐림진주19.2℃
  • 흐림강화17.5℃
  • 흐림양평19.2℃
  • 흐림이천18.8℃
  • 흐림인제13.5℃
  • 흐림홍천15.3℃
  • 흐림태백12.6℃
  • 흐림정선군14.9℃
  • 흐림제천17.3℃
  • 흐림보은17.6℃
  • 구름많음천안18.4℃
  • 구름많음보령17.8℃
  • 흐림부여18.8℃
  • 흐림금산18.2℃
  • 흐림19.0℃
  • 구름많음부안18.5℃
  • 구름많음임실19.0℃
  • 구름많음정읍18.9℃
  • 구름많음남원19.2℃
  • 흐림장수18.3℃
  • 구름조금고창군18.0℃
  • 구름조금영광군17.1℃
  • 흐림김해시19.2℃
  • 구름조금순창군19.8℃
  • 흐림북창원19.9℃
  • 흐림양산시20.0℃
  • 구름조금보성군20.0℃
  • 구름조금강진군20.2℃
  • 구름조금장흥19.3℃
  • 맑음해남20.2℃
  • 맑음고흥20.2℃
  • 흐림의령군19.4℃
  • 흐림함양군19.2℃
  • 구름조금광양시19.9℃
  • 맑음진도군20.2℃
  • 흐림봉화15.8℃
  • 흐림영주16.7℃
  • 흐림문경16.8℃
  • 흐림청송군16.8℃
  • 흐림영덕17.3℃
  • 흐림의성18.6℃
  • 흐림구미18.8℃
  • 구름많음영천18.0℃
  • 구름많음경주시18.2℃
  • 흐림거창17.0℃
  • 흐림합천18.7℃
  • 흐림밀양19.1℃
  • 흐림산청18.8℃
  • 구름많음거제18.9℃
  • 구름조금남해19.6℃
  • 흐림19.8℃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