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4 (금)

  • 흐림속초17.5℃
  • 흐림21.5℃
  • 흐림철원20.2℃
  • 흐림동두천20.3℃
  • 흐림파주20.2℃
  • 흐림대관령10.7℃
  • 흐림춘천21.3℃
  • 맑음백령도17.6℃
  • 흐림북강릉16.5℃
  • 흐림강릉17.6℃
  • 흐림동해19.1℃
  • 연무서울23.0℃
  • 흐림인천19.5℃
  • 구름조금원주26.0℃
  • 구름많음울릉도19.4℃
  • 구름많음수원22.7℃
  • 구름조금영월26.5℃
  • 맑음충주26.2℃
  • 구름조금서산23.4℃
  • 흐림울진19.2℃
  • 연무청주25.6℃
  • 맑음대전27.0℃
  • 구름조금추풍령27.3℃
  • 구름조금안동25.1℃
  • 구름조금상주28.2℃
  • 맑음포항18.8℃
  • 구름조금군산19.7℃
  • 맑음대구25.6℃
  • 맑음전주25.9℃
  • 맑음울산21.1℃
  • 맑음창원25.0℃
  • 맑음광주29.0℃
  • 맑음부산22.7℃
  • 맑음통영24.0℃
  • 맑음목포22.6℃
  • 맑음여수24.1℃
  • 맑음흑산도20.2℃
  • 맑음완도29.9℃
  • 맑음고창
  • 맑음순천28.5℃
  • 연무홍성(예)24.5℃
  • 구름조금25.1℃
  • 맑음제주23.0℃
  • 맑음고산18.1℃
  • 맑음성산27.4℃
  • 맑음서귀포27.2℃
  • 맑음진주28.8℃
  • 흐림강화19.5℃
  • 구름많음양평24.1℃
  • 구름많음이천25.8℃
  • 흐림인제17.0℃
  • 흐림홍천23.4℃
  • 흐림태백14.3℃
  • 구름많음정선군21.6℃
  • 구름조금제천25.4℃
  • 맑음보은25.4℃
  • 맑음천안24.3℃
  • 구름조금보령21.2℃
  • 맑음부여25.3℃
  • 맑음금산27.7℃
  • 맑음25.5℃
  • 구름조금부안21.0℃
  • 맑음임실27.7℃
  • 맑음정읍27.4℃
  • 맑음남원29.7℃
  • 맑음장수27.4℃
  • 맑음고창군26.7℃
  • 맑음영광군23.1℃
  • 맑음김해시27.6℃
  • 맑음순창군28.8℃
  • 맑음북창원29.7℃
  • 맑음양산시27.6℃
  • 맑음보성군28.9℃
  • 맑음강진군29.2℃
  • 맑음장흥27.0℃
  • 맑음해남26.8℃
  • 맑음고흥26.1℃
  • 맑음의령군32.2℃
  • 맑음함양군31.6℃
  • 맑음광양시28.0℃
  • 맑음진도군23.0℃
  • 흐림봉화21.9℃
  • 구름조금영주25.2℃
  • 구름조금문경27.7℃
  • 구름조금청송군23.1℃
  • 구름조금영덕19.8℃
  • 구름많음의성27.7℃
  • 구름조금구미28.6℃
  • 구름조금영천21.9℃
  • 구름조금경주시22.5℃
  • 맑음거창31.0℃
  • 맑음합천31.3℃
  • 맑음밀양31.0℃
  • 맑음산청30.9℃
  • 맑음거제22.6℃
  • 맑음남해26.7℃
  • 맑음27.1℃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