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 구름조금속초16.9℃
  • 흐림19.2℃
  • 흐림철원17.9℃
  • 흐림동두천18.0℃
  • 흐림파주17.7℃
  • 맑음대관령13.6℃
  • 흐림춘천18.8℃
  • 맑음백령도13.6℃
  • 구름조금북강릉16.5℃
  • 구름조금강릉19.2℃
  • 구름많음동해16.6℃
  • 비서울18.4℃
  • 구름많음인천17.4℃
  • 구름많음원주19.7℃
  • 구름많음울릉도17.3℃
  • 비수원17.8℃
  • 구름조금영월18.3℃
  • 구름많음충주18.1℃
  • 흐림서산18.0℃
  • 구름조금울진15.9℃
  • 구름많음청주19.7℃
  • 구름많음대전18.2℃
  • 구름많음추풍령18.7℃
  • 구름많음안동19.6℃
  • 구름많음상주19.9℃
  • 구름많음포항20.1℃
  • 흐림군산17.8℃
  • 구름많음대구23.3℃
  • 구름많음전주17.7℃
  • 맑음울산17.6℃
  • 맑음창원19.0℃
  • 맑음광주18.1℃
  • 맑음부산20.9℃
  • 맑음통영19.4℃
  • 맑음목포17.6℃
  • 맑음여수21.0℃
  • 구름조금흑산도17.2℃
  • 맑음완도17.1℃
  • 구름많음고창16.3℃
  • 맑음순천17.3℃
  • 흐림홍성(예)18.4℃
  • 흐림17.8℃
  • 구름조금제주18.5℃
  • 구름조금고산17.8℃
  • 구름조금성산17.6℃
  • 맑음서귀포17.3℃
  • 맑음진주17.4℃
  • 구름많음강화16.9℃
  • 흐림양평19.3℃
  • 흐림이천18.7℃
  • 구름많음인제19.2℃
  • 흐림홍천17.3℃
  • 흐림태백16.5℃
  • 구름많음정선군17.2℃
  • 구름많음제천17.5℃
  • 구름조금보은16.7℃
  • 흐림천안16.9℃
  • 구름많음보령17.7℃
  • 구름많음부여18.0℃
  • 구름조금금산17.2℃
  • 구름많음17.6℃
  • 구름많음부안16.6℃
  • 구름많음임실14.9℃
  • 구름많음정읍15.4℃
  • 구름조금남원16.7℃
  • 구름조금장수14.0℃
  • 구름많음고창군14.8℃
  • 구름조금영광군16.2℃
  • 맑음김해시19.8℃
  • 구름조금순창군16.0℃
  • 맑음북창원20.8℃
  • 맑음양산시19.6℃
  • 맑음보성군18.6℃
  • 맑음강진군17.9℃
  • 맑음장흥17.6℃
  • 맑음해남17.0℃
  • 맑음고흥17.6℃
  • 맑음의령군19.6℃
  • 구름조금함양군19.3℃
  • 맑음광양시19.9℃
  • 구름조금진도군15.8℃
  • 흐림봉화15.1℃
  • 구름조금영주18.7℃
  • 구름많음문경18.5℃
  • 구름많음청송군13.8℃
  • 구름많음영덕15.1℃
  • 구름많음의성16.8℃
  • 구름많음구미21.7℃
  • 구름많음영천18.2℃
  • 구름조금경주시18.0℃
  • 구름많음거창18.1℃
  • 맑음합천21.8℃
  • 맑음밀양20.7℃
  • 맑음산청20.2℃
  • 맑음거제20.8℃
  • 맑음남해21.5℃
  • 맑음18.9℃
기상청 제공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면’에 관한 기독교적 견해는?

크리스천 큐앤에이

Q 질문 : 기독교에서 보는 최면에 대한 관점과 그 관점에 대한 이유(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 최면이란 원래 ‘잠(hypnosis)’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헬라어로, 자신에게 최면을 건 사람의 지시를 따라 일정한 행동 혹은 말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100년 전, 심리 분석학이 시작될 당시 프로이트와 융은 인간의 심리분석을 위해 최면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담보다 최면을 통해 이야기할 때 훨씬 저항이 없이 자신의 기억이나 삶을 진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프로이트나 융은 최면의 한계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 방법을 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전능한 잠재력이 아닌 것처럼, 그것이 보여주는 최면의 잠재력 역시 제한되고 조작됩니다. 최면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 역시 그 개인의 환상이나 소망이나 불안의 감정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면에서 나온 진술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에서 최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선명한 의식의 상태에서, 책임 있는 개인 인격의 각성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관점에서 볼 때 최면은 건전한 기독교적 신앙 실천의 중심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실제 최면의 양상들을 보면 다분히 종교 체험적입니다. 최면에는 영적 개방성이 있어서, 자칫 최면이 영적으로 불건전한 또 다른 영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만나는 통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면은 결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현실과 의지의 원리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특별하게 감독받아 허용된 제한된 목적의 상황 외에, 최면에 접하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답변자 :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실천신학)

<‘크리스천 큐앤에이’(도서출판 등과 빛) 中 요약 발췌>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