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에서 천국으로(2)
박효진 장로
서울명문교회
청송2감호소로 옮겨온 후에도, 그의 생활은 언제나 거칠고 즉흥적이어서 잊어버릴 만 하면 꼭 사고를 치고 징벌과 함께 독방을 전전하는 문제 수용자였습니다. 교도관이든 동료수용자들이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의견이 맞지 않으면 무조건 부딪쳐 싸움을 하는 특이한 성격으로 모두가 가까이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와 진지한 모습으로 간청을 하였습니다.
“박 주임님, 저 검정고시반 학과반에 좀 넣어 주이소.”
“니가 지금 뭐라카노. 학과반? 야야 정신차리라. 니 주제를 알아야제. 허구한 날 사고치고 독방가는 니가 무슨 학과반이고?”
검정고시 학과반은 감호소 내에서 수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입니다. 중등반, 고등반으로 나뉘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인데 노동이나 작업도 없고 외부 강사들도 접할 수 있어서 감호소 내에서 구하기 힘든 물품들을 얻기도 하고 간혹 교도관 몰래 담배 등도 손에 넣을 기회가 생길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성태야. 학과반에 가서 징역살이 편하게 살려고 잔머리 굴리네? 그런데 니는 자격 미달인 거 누구보다 니가 더 잘 알낀데. 징벌 전력자는 아예 선발이 안 되는 거.”
“아닙니다. 징역살이가 문제가 아니고요.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숱한 징역살이의 원인이 딱 하나, 내가 무식해서 그렇다는 것이라요. 지금부터라도 공부해서 이 무식한 인간이 눈 좀 뜨고 새 인생 한번 살아 보겠다는 겁니다요.”
그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드물게, 아주 드물게 그 눈 깊은 곳에서부터 일말의 진심이 우러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법은 법입니다.
“성태야, 규정이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 하다못해 직업훈련이라도 받아 보는 게 어떻겠나?”
그러자 그가 갑자기 고성을 지르며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규정에 안되니까 내가 주임님께 사정하는 거 아입니꺼? 가리늦게(너무 늦게 라는 경상도 사투리) 인간 되는 길을 찾았는데 이것마저 안되면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더.”
그는 나에게 나가시려면 자기를 밟아 죽이고 나가시라며 아예 출입문 앞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신입으로 들어오던 날 강당에서 드러누워 나를 쳐다보던 그때의 그가 생각났습니다. ‘밥도 안 먹고 왜 드러누워 있냐’고 힐책하던 내게 그가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내리치며 내뱉었던 말이 문득 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보소! 주임님요. 내가 짐승인교? 이 땅바닥에 앉아서 밥을 묵으라꼬요? 차라리 굶고 말지!”
내 마음에 순간적인 감동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친구를 정말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길만 있다면 한 번쯤 기회를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관계직원들과 과장과의 협의를 거치고 소장에게 그간의 사정을 보고하고 내가 보증을 서겠노라고 하는 등 노력 끝에 특별히 그를 중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반으로 편입을 시켜 주었습니다.
많은 직원들과 재소자들은 내가 성태에게 속아서 편한 교육생으로 보내주었다며 그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사고를 치고 퇴교조치를 당할 것인지 지켜보자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런 직원들과 다른 수용자들의 기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외로 열심히 이를 악물고 책과의 씨름을 계속하였습니다.
감호소의 밤은 일찍 찾아옵니다. 저녁 점호가 끝나고 취침시간이 되면 감방 안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의 전등만 켜 두고 모든 등을 소등합니다.
잠도 거의 자지 아니하는 그는 책을 읽기에는 방 안이 너무 어두워 복도 철장 밖으로 책을 내어 밀고 감방보다는 조금 더 밝은 복도의 조명등에 의지하여 공부하는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주임님요, 저는 기초도 없고 응용력도 없어서 그냥 책을 통째로 외워야 답이 나오는기라요. 무식한 방법이지만 달리 길이 없습니더.”
긴 세월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며 주먹질과 싸움질로 교도소를 집처럼 알고 살아왔던 한 인생이 드디어 누에고치 속에서 밝은 빛의 세계를 향해 꿈틀거리는 애벌레처럼 생명의 기운이 그 속에 태동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도 이 놀라운 일의 시작과 결말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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