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지역 최초의 순교자, 소텔 선교사
김승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소텔 선교사
Chase C. Sawtell, 1881-1909)
남북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은 분열된 상태였다. 1865년부터 1918년까지의 미국의 역사는 남북 전쟁 후에 미국 재건이 시작되어, 산업화가 진전된 시대였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많은 노동조합이 탄생했고 파업이 이어졌다. 특히 약 50여 년 동안(1865년~1918년) 유럽을 중심으로 다른 대륙에서 2,750만 명이나 되는 이민자가 미국으로 몰려들어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고, 캘리포니아 주(州)와 같이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 다양한 지역사회가 형성됐다.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은 작은 거류지로 이주 당했고, 백인 농장주와 목장주의 소유가 되었다. 공장 노동자는 학대와 폭력에 시달렸고, 그것에 수반하여 노동 운동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소텔(史佑大, Chase Cranford Sawtell) 선교사는 1881년 1월 9일, 네브라스카(Nebraska) 주(州) 소재 티케이마(Tekamah)에서 출생했다. 그는 환경이 좋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從)으로 불러 선교사로 보내시려고 했을 때 소텔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조건 순종했다. 네브라스카 주의 밸리뷰(Bellevue) 대학을 졸업한 소텔은 오마하(Omaha) 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 졸업했다. 그 해 목사 안수(按手)를 받고 파송 받아 1907년 10월 16일 한국에 도착했다. 소텔 선교사 부부는 처음에 대구선교부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재목이었던 그는 대구선교부에 있던 선교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08년 안동선교부가 신설되었을 때 소텔 선교사는 자원(自願)하여 대구보다 열악한 환경인 안동 땅으로 이사했다. 안동선교부의 초대 주재 선교사가 된 그는 헌신했다. 특히 1909년 11월 16일 순교하기 전 까지 1년 동안 그를 통해 안동 땅에 의미 있는 전도와 새신자 양육이 이루어졌다. 복음전도의 전형적인 패러다임(paradigm)인 양육, 파송, 전도를 통해 안동지역 부흥의 기초를 마련했다. 하지만 소텔 선교사는 풍토병인 장티푸스에 걸려 28세의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소텔 선교사는 무려 109년 동안 한국교회 속에서 잃어버린 선교사였다. 이 글을 통해 우리의 뇌리 속에서 잊혀진 소텔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소텔 선교사의 가정(家庭)
소텔 선교사는 1881년 1월 9일, 미국 네브라스카(Nebraska) 주(州) 소재 티케이마(Tekamah)에서 출생했다. 소텔의 아버지는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에서 출생한 해리 소텔(Harry C. Sawtell)로 그는 세 번 결혼했는데, 소텔 선교사는 두 번째로 결혼한 제시 소텔(Jessie D. Sawtell)에 의해 출생했다. 제시 소텔은 소텔 선교사와 리트를 낳았다. 소텔 선교사의 동생인 리트는 몬타나(Montana) 주 아나콘다 시에서 척추 전문의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텔 선교사의 부친은 1885년, 티케이마 북쪽으로 약 13Km 떨어진 실버 크릭(Silver Creek)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소텔의 부친은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하이오(Ohio) 주의 댄빌(Danville)로 이사해 살기도 했다.
9세인 1900년, 소텔의 가정은 1870년에 거주한 적이 있던 아이오와(Iowa) 주 드모아 카운티 덴빌에서 살았다. 이 때 소텔 선교사 부친의 직업은 여전히 농부였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농부에 비해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미국의 농업은 현저한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의 피폐, 자연 재해, 자급자족 비율 감소와 연방 정부의 적절한 법적 보호와 지원의 부족 등으로 농부들의 삶은 지처 있었다. 일반적으로 19세기 미국 소작농의 대다수는 빚에 쪼들렸고, 유일한 탈출구는 수확량을 높이 과잉 생산이었으나 과잉 생산은 판매 가격 하락과 소득 감소로 이어졌고, 그 결과 토지는 피폐하고 토지 소유자나 소작농 모두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따라서 다른 농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소텔의 가정은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소텔 가정은 다시 네브라스카 주의 오마하(Omaha)로 이주했고, 그 이후에는 오마하 인근에서 계속 거주했다. 소텔 선교사가 한국으로 오기 전인 1907년 3월 5일에 작성한 미국 장로교 해외 선교부에 제출한 선교사 지원서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오마하 노스(North) 21가 3303번지였다. 따라서 성장한 이후 소텔 생활의 중심 무대는 네브라스카 주의 오마하라고 할 수 있다. 네브라스카 주 티케이마에서 출생한 소텔 선교사는 웨스트 버지니아, 몬타나, 오하이오, 아이오와 주를 전전하다가 오마하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소텔 가정은 믿음의 가정이었다. 비교적 자주 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착한 지역에 있는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했기 때문이다.
2. 소텔 가정의 신앙(信仰)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한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추적하여 연구하고 있는 손상웅 목사에 의하면 소텔이 최초로 섬긴 교회는 네브라스카 주의 티케이마 교회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여렸을 때 소텔은 여러 주(州)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다. 4살 때인 1885년, 소텔의 가정은 티케이마에서 실버 크릭(Silver Creek)으로 이주했다. 소텔은 시골의 작은 교회인 실버 크릭(Silver Creek) 감리 교회에서 1897년 11월, 낙스 본디(Knox Bonde)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당시 실버 크릭에는 장로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가정은 감리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소텔의 누나도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아 소텔 가정이 실버 크릭으로 이사 온 이후 온 가족이 모두 실버 크릭교회에 출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1861년 1월 11일, 공식적으로 오마하 제2장로교회(The Second Presbyterian Church of Omaha City)로 명명되었다가 1888년 4월, 오마하 제1장로교회(The First Presbyterian Church of Omaha)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소텔이 오마하로 이사해 교회를 정하고 등록할 당시는 교회 이름을 변경하기 이전(以前)이었기 때문에 오마하 제2장로교회가 옳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오마하에는 1867년에 설립된 또 다른 교회가 있었다. 이름은 오마하 중앙장로교회(Central Presbyterian Church)로 당시 해외선교를 특별히 강조하는 교회였다. 제1장로교회와 중앙장로교회는 오마하의 대표적인 교회로 교회가 설립된 이래 오마하 지역 교회들의 중심교회였다. 그러나 두 교회는 1950년대 최고로 성장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1917년 3월 11일에 준공된 오마하 제1 장로교회의 모습으로 1959년엔 교회 역사상 최고로 2188명이 등록하고 있었다. 타개책을 모색하던 두 교회는 2014년 합병(合倂)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하 내용은 논문원문 첨부파일 참조)
편집부 www.gbhana.com
Copyright @2024 경북하나신문 하나굿뉴스. All rights reserved.
▲영남협의회 주최 각 지역별 협의회장 및 노회장, 장로회장의 취임감사예배에 참석한 영남인들이 화합을 다짐하고 있다. 예장합동 제...
▲영주시 평은면 연당교회, 사랑의 지팡이 100개 기부.(사진=영주시 제공) 영주시 평은면 연당교회는 지난 8일 평은면에 사랑의...
“주님이 가장 사랑하시는무명의 기도자들께” 책소개 ❙ 이 책은 기도의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기도의 방향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되도록 영점(零點)을 ...
▲ 한국국제기드온협회 제15차 대경지역대회에 참석한 회원들의 전체 기념촬영. 한국국제기드온협회 제15차 대경지역대회가 지난 4월...
2014년, 후티(시아파 무슬림 소수 집단)는 하디 대통령에 맞서 쿠테타를 일으켰다. 하디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했고 내전은 계속되었다. 10만명의 사망자와 25만명의 실향...
▲ 예천 풍양면 서동교회(기독교한국침례회 경북지방 소속)에 세워진 종탑. “때앵~ 땡~ 때앵~ 땡~” 한국교회에서 종소리는 큰...
▲이철우 도지사가 포항지역발전협의회·포항시의정회 초청 특별강연회에 참석해 특강을 하고 있다.(사진=경북도 제공) 이철우 경북도지...
▲형산강 유채꽃 단지현장.(사진=경주시 제공) 경주 형산강변이 황금빛 유채꽃 물결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시는 서천교 인근...
▲경상북도·고령군, 합동 배회대처 모의훈련 실시.(사진=고령군 제공) 고령군(군수 이남철)은 5월 9일(목) 우곡면 도진리 치매...
▲최첨단 통합RPC 준공식에서 테이프 커팅식을 하고 있다.(사진=구미시 제공) 구미시는 10일 선산읍 화조리에서 농협 쌀 조합 ...
▲영주시인재육성장학회, 장학생 274명 선발.(사진=영주시 제공) 영주시인재육성장학회는 지난 9일 개최된 제53차 이사회에서 올...
▲울릉군, 바다식목일 기념행사 대통령 표창 수상.(사진=울릉군 제공) 울릉군이 5월 10일 경북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해양수산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