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 맑음속초17.5℃
  • 맑음8.4℃
  • 구름조금철원9.1℃
  • 맑음동두천10.2℃
  • 구름조금파주8.3℃
  • 맑음대관령2.9℃
  • 맑음춘천9.2℃
  • 박무백령도11.3℃
  • 맑음북강릉14.4℃
  • 맑음강릉15.7℃
  • 맑음동해12.9℃
  • 맑음서울11.4℃
  • 맑음인천12.2℃
  • 맑음원주10.6℃
  • 맑음울릉도11.4℃
  • 맑음수원11.2℃
  • 맑음영월6.9℃
  • 맑음충주9.8℃
  • 맑음서산8.9℃
  • 맑음울진10.7℃
  • 맑음청주11.6℃
  • 맑음대전10.4℃
  • 맑음추풍령10.6℃
  • 안개안동6.4℃
  • 맑음상주9.0℃
  • 맑음포항10.3℃
  • 맑음군산9.8℃
  • 맑음대구9.7℃
  • 맑음전주11.8℃
  • 맑음울산9.4℃
  • 맑음창원11.8℃
  • 맑음광주10.9℃
  • 맑음부산11.4℃
  • 맑음통영10.5℃
  • 맑음목포12.1℃
  • 맑음여수12.1℃
  • 맑음흑산도14.4℃
  • 맑음완도12.5℃
  • 맑음고창9.2℃
  • 맑음순천8.2℃
  • 맑음홍성(예)10.0℃
  • 맑음9.4℃
  • 맑음제주12.8℃
  • 맑음고산14.2℃
  • 맑음성산12.7℃
  • 맑음서귀포13.9℃
  • 맑음진주9.4℃
  • 맑음강화10.3℃
  • 맑음양평9.4℃
  • 맑음이천10.7℃
  • 맑음인제5.9℃
  • 맑음홍천7.0℃
  • 맑음태백5.0℃
  • 맑음정선군3.0℃
  • 맑음제천7.8℃
  • 맑음보은7.5℃
  • 맑음천안8.5℃
  • 맑음보령10.9℃
  • 맑음부여8.6℃
  • 맑음금산6.5℃
  • 맑음10.3℃
  • 맑음부안11.3℃
  • 맑음임실6.7℃
  • 맑음정읍9.8℃
  • 맑음남원8.8℃
  • 맑음장수5.0℃
  • 맑음고창군8.8℃
  • 맑음영광군8.8℃
  • 맑음김해시9.6℃
  • 맑음순창군8.7℃
  • 맑음북창원11.2℃
  • 맑음양산시10.1℃
  • 맑음보성군11.8℃
  • 맑음강진군9.6℃
  • 맑음장흥10.1℃
  • 맑음해남9.8℃
  • 맑음고흥11.0℃
  • 구름많음의령군8.4℃
  • 맑음함양군7.0℃
  • 맑음광양시11.4℃
  • 맑음진도군9.9℃
  • 흐림봉화5.2℃
  • 맑음영주8.1℃
  • 구름많음문경7.3℃
  • 맑음청송군4.4℃
  • 맑음영덕11.7℃
  • 맑음의성6.0℃
  • 맑음구미9.3℃
  • 맑음영천5.4℃
  • 맑음경주시7.0℃
  • 맑음거창5.8℃
  • 맑음합천7.8℃
  • 맑음밀양8.2℃
  • 맑음산청7.1℃
  • 맑음거제11.4℃
  • 맑음남해12.8℃
  • 맑음9.0℃
기상청 제공
나의 출애굽기(28)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출애굽기(28)

북한선교현장

나의 출애굽기(28)


드보라


67. 백인 선교사님을 통해 지식을 익히다


그렇게 도움을 받다가 하루는 그 백인 선교사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셨다. “저희 생각에 드보라 씨는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드보라님께 성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나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었다. 고난의 행군과 중국 생활 속에서 주로 생계를 걱정하고 먹고살기 바빴던 나로서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마치 꿈과 같았다.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귀하게 생각해주시다니 ···.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권유대로 선교사님을 따라 좀 더 큰 도시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2일에 한 번씩 그 선교사님 집에 찾아가 여러 가지 지식을 익혔다.


선교사님 집에서 처음 접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컴퓨터였다. 선교사님은 나에게 컴퓨터도 가르쳐주시고 여러 동영상도 보여주셨는데 특별히 북한에 대한 영상을 많이 보여주셨다. 차인표씨 주연의 탈북자의 애환을 담은 영화 ‘크로싱’도 그 집에서 봤다. 그 영상을 함께 보면서 나는 거기 나오는 악역들을 보며 ‘이 나쁜놈들 저 나쁜놈들’ 하고 있는데 슬쩍 옆의 백인 선교사님을 보니 퍼런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북한 사람이 받는 고통에 나보다도 더 마음 아파하시는구나 ···. 무덤덤했던 내 마음도 왠지 뭉클해졌다.


내가 감동받을 일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선교사님 댁에는 한 탈북민 갓난아기가 있었다. 아기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북송되면서 남겨진 아이였다. 마침 백인 선교사님의 사모님은 생후 10개월 되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은 이유식 먹이고 그 젖을 그 아이에게 먹이셨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북한의 아이를 이 백인 선교사 가정이 얼마나 귀하게 돌보는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북에서 배웠던 각종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백인 선교사라고 하면 미제 승냥이다 스파이다 악마 같은 사람이라고 욕했는데 이 사람은 자기를 원쑤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이렇게나 사랑하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북한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에서 가르친 내용이 다 거짓이라고 폭로하고 싶었다. 남조선 괴뢰도당이, 미제 승냥이가 오히려 우리를 더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고 있다고 꼭 북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68. 중국을 벗어나 복음 전할 기회를 갖기로 하다


그렇게 선교사님 덕분에 공부도 하고 생활도 지원받으면서 나는 중국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교사님을 통해 공부도 하고 복음 안에서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서 가만히 숨어서 생활해야 하는 이곳에 머물기보다는 더 자유롭게 복음도 전하고 기회 되는대로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선교사님도 내 생각을 듣자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미국을 알아보았지만 미국으로 난민 신청을 하거나 이민을 가기란 쉽지 않았다. 난민 신청을 하고 국적취득 하는 데 최소 수년은 걸린다고 했다. 반면 한국은 국적취득이 어렵지 않다. 게다가 TV에 탈북민들 활동하는 것을 보고 남조선에 가도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오픈도어 제공)

관련기사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